안녕하세요! 개발일지로는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기획을 피봇하던 중이라서 뭔가 제대로 확정된 후 쓴다는 게 몇 달이나 지나고 말았네요😥 1월은 기획/UI에 대해 공부하고 환기를 위해 게임잼에 참여(를 시도)하면서 이런 저런 깨달음이 많은 달이었습니다.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게임핑에서 일간 개발일지를 통해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꾸준히 보고는 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무슨 게임을 만들고 있는지는 말씀드린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개발중인 게임 "달리는 자들을 위하여"(이하 달자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주인공 플라이는 대도시 라우치의 카우걸이 되기 위해 가이드 잭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카우걸은 하늘을 나는 소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직책으로, 평생 극진한 대접과 존경을 받지만 3년이 지나면 뇌가 망가져 죽습니다. 달자여의 모험은 영광이 아니라 죽음을 향한 여정입니다.
게임의 진행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랜덤 인카운터를 마주치고, 선택지를 고르고, 아이템과 자원을 얻거나 잃는 서울 2033 스타일의 텍스트 어드벤처입니다. 하지만 플레이를 거듭할수록 이야기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모험 이상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카우걸이 되지 않는 다른 결말은 없을까요? 카우걸이 되는게 꼭 나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플라이는 왜 카우걸이 되고 싶은 걸까요?
스토리만큼이나 차를 타고 메마른 황무지를 횡단한다는 판타지 또한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여행 중에 마주치는 다양한 사람들, 야영지에서 식사와 대화를 하면서 쌓이는 우정, 도로 한가운데에서 퍼진 차와 같이 여행을 사실적으로 만들어주는 디테일이 잔뜩 들어갈 예정입니다.

다시 개발일지로 돌아와서, 지난 달에 기획에 대한 숙고를 마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UI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화면이 훨씬 비어보여서 당황했습니다. 레퍼런스를 참고하면서 짠 UI인데 왜지?!

제가 의도했던 것은 로드 96처럼 아주 미니멀한 UI를 사용해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영화같은 몰입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이미지처럼 밀도있는 배경 일러스트를 그릴 수 없기 때문에 화면이 굉장히 비어보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이것이 UI 하나에만 묶여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두 개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
미야모토 시게루 님의 격언입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기획에 맞춰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제 단점을 커버하면서도 플레이 경험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맞춤 기획이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저는 우선 제 약점과 강점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스프라이트/포트레이트 가리지 않고 캐릭터를 잘 그림
애니메이션 감각
다양한 툴을 푹먹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만들어봄
매력적인 캐릭터와 세계관
허접한 배경
긴 글 못 씀
복잡한 데이터나 물리엔진 쓰는 게임 만들기 어려워함
즉, 저는 큰 맵을 돌아다니는 rpg / 배경 일러스트가 많이 필요한 비주얼 노벨 / 글 묘사 중심의 디스코 엘리시움 스타일 게임보다는 제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캐릭터를 강조하는 단문 위주의 게임을 만드는 게 낫습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그냥 카드에 환장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UI 기반의 디자인이라 배경을 적게 그려도 되고, 랜덤 이벤트를 계속 마주친다는 게임의 기획과도 잘 맞는 구석이 있어서(카드는 덱을 섞어서 랜덤으로 뽑는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 자연스럽게 카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인카운터를 카드 한 장으로, 전체 모험을 하나의 덱으로 생각하니 기획이 훨씬 간결해지고 더 다양한 기획적인 시도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앞으로의 모험에 역경이 닥칠 예정이라는 것을 단순히 글 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불리한 인카운터 카드를 덱에 넣음으로써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의 1인 개발 게임인 시티즌 슬리퍼는 큰 3D 배경 하나만 만들고 나머지는 글과 UI로 묘사합니다. 제가 카드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UI에 대해 고민하다가 찾은 유튜브 채널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뽑는 법' 이나 '작은 게임을 만드는 법'같은 영상을 보다 보니 제가 배운 개념을 새로운 게임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itch 미니잼에 참여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데스 2라는 게임을 미친듯이 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양상의 무기와 은혜를 조합해서 나만의 빌드를 만드는 재미가 있는 로그라이크 게임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빌드가 극딜을 뽑는 뿌듯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2~30분의 다소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경험을 바로 겪어볼 수 있게 하는 건 어떨까요?
시작하자마자 모든 은혜-주문을 고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대신 고를 수 있는 주문의 수에 제한을 둬서요. 플레이어는 머리 속에서 레벨을 깰 수 있는 빌드를 구상하고, 실험하고, 다시 조정합니다. 이것이 하데스의 1세션에 해당하는 경험입니다! 겉모습은 퍼즐이지만 근간은 초미니 로그라이크인 셈이지요. 이거라면 배경도 적게 그리고, 레벨 디자인도 쉽고, 재미도 있고, 플레이타임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있게 기획을 해놓고 왜 제출을 실패했을까요? 사실 원인은 간단합니다. 저는 게임의 스코프를 제가 옛날에 2일 게임잼에서 만든 게임과 비슷하게 설정했습니다.

마이크로 프렌드라는 로컬 2인용 게임으로, 거대로봇 안의 박사들이 뛰어다니며 버튼을 누르고 로봇을 조종하는 게임입니다. 이것을 2일동안 만들었으니 3일이면 넉넉하게 개발하고 폴리싱ㅋㅋ까지ㅋㅋ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 때 저희는 4인팀이었다는 사소한 찐빠가 있었습니다...
주문 조합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유지보수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쓴 코드가 슬슬 알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밤을 새다 마감을 6시간 남기고 물리적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서 GG를 선언했습니다. 코딩에 들어가는 공수를 얕잡아본게 패착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의 개발일지인데 게임에 큰 진척이 없어 후원자 분들께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ㅠ 사실 UI를 다시 개발하는 중에 플러그인에 버그가 발생해서 지금은 개발을 멈추고 개발자님의 버그픽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그분도 그 일 하나만 하지 않으시다보니 언제 픽스가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알만툴은 이렇듯 플러그인 의존도가 높아서 개발이 불안한 것이 흠입니다. 기획이 단순해진만큼 다시 gdevelop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럼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2월 개발일지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0개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